
들어가며 - 이 칼럼이 다루는 범위
스타트업 투자 도구 중 SAFE는 분류 기준 자체가 아직 제도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독특한 영역입니다. 같은 투자금을 받아도 그것을 자본으로 볼지 부채로 볼지가 정해지지 않아, 재무제표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칼럼은 분개를 단정적으로 제시하기보다, 각 기준에서 현재 통용되는 처리와 그 근거, 그리고 진행 중인 제도 변화를 정리하는 데 무게를 둡니다.
1. SAFE란 무엇인가 — 법적 정의부터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는 미국 Y Combinator가 만든 투자 방식으로, 투자금만 먼저 받고 주식 수와 주당 가격은 후속 투자 라운드에서 결정되는 기업가치에 연동해 나중에 확정하는 구조입니다.
국내에는 2020년 8월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 시행과 함께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벤처투자법은 제2조 제1호 라목에서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투자금액의 상환만기일이 없고 이자가 발생하지 아니하는 계약으로서, 중소벤처기업부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한 지분 인수"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소벤처기업부령의 요건은 같은 법 시행규칙 제3조가 정하며, 다음 세 가지입니다.
- 투자금액이 먼저 지급된 후, 후속 투자에서 결정된 기업가치 평가에 연동하여 지분이 확정될 것
- 투자를 받는 회사가 계약 당사자가 되고, 그 계약에 대해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을 것
- 회사가 자본 변동을 가져오거나 가져올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SAFE 체결 사실을 상대방에게 문서로 고지할 것
이 정의에서 회계처리의 출발점이 되는 두 가지 사실이 나옵니다. (가) 상환만기와 이자가 없고, (나) 계약 시점에는 발행 주식 수가 확정되지 않는다. 이 두 특성이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SAFE 분류 문제의 핵심입니다.
2. 부채냐 자본이냐 - SAFE는 양쪽 성격을 모두 갖는다
SAFE는 자본 같기도, 부채 같기도 한 상품입니다. 양쪽 논거를 나란히 놓고 보면 왜 결론이 안 나는지 분명해집니다.
| 구분 | 자본으로 보는 근거 | 부채로 보는 근거 |
|---|---|---|
| 상환·이자 | 상환만기·이자가 없음 → 현금 지급 의무 없음 | - |
| 발행 형식 | 장래에 주식 형태로 전환됨 | 계약 시점에는 발행 주식 수·주당가치 미확정 |
| 기준상 자본 정의 | - | 일반기준상 자본=주주 납입자본, 납입자본=발행된 주식의 납입금액 → 아직 주식 미발행 |
2-1. 일반기업회계기준 - 명확한 규정이 없다.
K-IFRS와 달리, 대부분의 초기 스타트업이 적용하는 일반기업회계기준에는 SAFE에 대한 회계처리 방법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2024년 5월경 중소벤처기업부가 SAFE를 자본으로 볼지 부채로 볼지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채로 보는 관점과 자본으로 보는 관점이 모두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습니다.
부채 쪽 논거는 자본의 정의에서 출발합니다. 일반기업회계기준 제15장 문단 15.2는 자본을 "기업의 자산에서 모든 부채를 차감한 후의 잔여지분"으로 보고 그 기초를 '주주로부터의 납입자본'에 둡니다. 그리고 납입자본은 상법 제295조 등에 따라 주식회사가 발행한 주식에 대한 납입금액을 의미합니다. SAFE는 계약 시점에 아직 주식을 발행하지 않았으므로, '발행된 주식의 납입금액'이라는 납입자본의 틀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발생시점에 발행주식 수와 주당 가치가 확정되지 않는 ‘부채’ 성격)
2025년 8월 금융위원회 간담회 자료에서는 "현재는 SAFE 발행 시 일반기업회계기준에 따라 부채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어 투자받은 기업의 부채가 증가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부채로 분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나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반대 방향도 가볍지 않습니다. SAFE의 실질이 만기도 이자도 없고, 아직 관련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본으로 분류하는 것이 무조건 틀린 회계처리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일반기준 적용 기업은 각 회사의 상황에 따라 담당 회계사와 논의해 처리 방식을 정하고, 이후 기준이 마련되어 차이가 생기면 회계처리를 수정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2-2. K-IFRS - 회계기준원 질의회신은 '금융부채'로 결론
K-IFRS는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회계기준원 질의회신([색인어] SAFE, 조건부지분인수계약 / 회신일 2022. 7. 5., 공개일 2023. 12. 27.)은 SAFE에 대해 "회사가 투자자에게 신주발행이나 금전 지급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금융부채로 분류한다"고 회신했습니다. 근거는 제1032호 문단 16과 문단 19입니다.
논리를 풀면 이렇습니다. 제1032호 문단 16은 어떤 금융상품이 지분상품이 되려면 ① 현금 등 금융자산을 인도할 계약상 의무가 없어야 하고, ② 자기지분상품으로 결제하는 경우에도 변동 가능한 수량의 자기지분을 인도할 의무가 없는 비파생상품이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SAFE는 후속 라운드의 기업가치에 따라 인도할 신주 수량이 변동합니다. 나아가 해당 질의 사안처럼 특정 상황에서 투자금을 상환(현금 지급)하도록 약정된 경우라면, 회사는 그 지급을 무조건 회피할 수 없습니다. 즉 ②의 '확정 수량' 요건을 깨고, ①의 '현금 인도 회피' 요건도 무조건적이지 못합니다.
여기에 문단 19가 쐐기를 박습니다. 현금 등 금융자산의 인도를 회피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권리를 발행자가 갖고 있지 않으면, 그 의무는 금융부채의 정의를 충족합니다. SAFE 발행 회사는 신주발행이든 금전상환이든 그 지급을 무조건 회피할 수 없으므로, K-IFRS상 금융부채로 분류된다는 것이 회신의 결론입니다.
2-3. 한 줄 요약
K-IFRS는 답이 분명하고, 일반기준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K-IFRS는 질의회신으로 금융부채라는 결론이 섰습니다. 반면 일반기준은 명문 규정이 없어 부채·자본 양론이 갈리며, 현재 실무는 부채 쪽이되 자본 분류가 무조건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태입니다. '상환만기·이자 없음'(자본 측면)과 '발행 주식 미확정·상환 가능성'(부채 측면)이 한 상품 안에 섞여 있는 것이 SAFE의 본질입니다.
3. 제도는 아직 움직이는 중 - 자본 처리 허용 논의
SAFE 회계처리는 제도적으로 아직 움직이는 중입니다.
- 2025년 8월 12일 금융위원회가 금감원·회계기준원·금융투자협회·벤처캐피탈협회 등과 '장기·벤처투자 회계 애로' 간담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벤처캐피탈협회가 SAFE를 '자본'으로 회계처리할 수 있는 방안과 투자자의 공정가치평가 부담 완화를 공식 건의했습니다.
- 같은 자리에서 영구폐쇄형 인프라펀드는 '지분상품' 분류로 즉시 회신이 이뤄졌지만, SAFE는 "관계기관과 종합 검토" 단계로, 결론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 금융위는 SAFE를 자본으로 처리하는 방안과 공정가치평가 부담 완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2026년 6월까지도 구체적인 후속 조치나 의견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배경에는 시장 규모가 있습니다. SAFE 투자금액은 2020년 도입 이후 매년 늘어 2024년에 1,6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부채 처리로 인한 재무구조 부담, 그리고 매년·매분기 기업가치를 재평가해야 하는 실무 부담이 업계 건의의 핵심 이유입니다.
4. 대표·실무자가 실제로 부딪히는 지점
(1) "투자받았는데 부채비율이 나빠졌다"
부채로 잡히면 자본은 그대로인데 부채만 늘어 부채비율이 악화됩니다. 외부감사·차입 약정·후속 투자 심사에서 재무비율이 걸림돌이 될 수 있고, 누적되면 자본잠식 판단에도 영향을 줍니다.
(2) Valuation cap과 discount - 전환 시점까지 지분율을 모른다
SAFE는 가치평가를 미루는 대신, 할인율(discount)과 가치평가 상한(valuation cap)만 합의합니다. 후속 라운드 밸류가 확정돼야 비로소 주식 수가 정해지므로, 계약 시점에는 투자자 지분율·주주구성이 확정되지 않습니다. 창업자에겐 협상 시간 단축과 경영권 보호라는 장점이, 동시에 '나중에 얼마나 희석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공존합니다.
(3) 후속 라운드의 일괄 전환 → 자본 변동 충격
여러 건의 SAFE가 후속 라운드에서 한꺼번에 전환되면 지분 희석과 자본 구조 변동이 한 시점에 몰립니다. cap table을 미리 시뮬레이션하지 않으면 창업자 지분이 예상보다 크게 줄어드는 일이 생깁니다.
(4) 공정가치 재평가 부담(투자자 측)
기업가치 산출이 어려운 초기 기업일수록, 투자자는 매년·매분기 SAFE의 공정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하는 부담을 집니다. 업계가 완화를 요구하는 실무적 핵심이 이 부분입니다.
시사점
SAFE는 '간단한 계약(Simple Agreement)'이라는 이름과 달리, 회계적으로는 가장 정리되지 않은 투자 도구입니다.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두 기준의 위치가 다릅니다. K-IFRS는 회계기준원 질의회신으로 금융부채 분류가 사실상 정리됐습니다. 반면 일반기업회계기준에는 SAFE를 직접 규율하는 규정이 없고, 부채 처리는 '발행 주식 미확정 → 납입자본 요건 미충족'이라는 해석에 기반한 잠정적 분류입니다.
둘째, 그 일반기준 쪽이 움직이는 중입니다. 2025년 8월 당국이 SAFE의 자본 처리 허용 가능성을 검토 단계에 올린 만큼, 지금 SAFE를 발행·검토하는 기업(특히 일반기준 적용 기업)은 처리 방식을 회계사와 협의해 정하되, 향후 기준 정비 시 재분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셋째, 그래서 SAFE는 "받기 전에 회계·세무 자문이 들어가야 하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계약서의 cap·discount·전환 조건이 곧바로 재무제표와 cap table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계약 협상 단계가 곧 회계 설계 단계라는 점이 SAFE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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